총수가 없는 조직의 리더십은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한경머니가 올해 신설한 '베스트 금융 리더십' 조사는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국내 은행계 금융지주 8곳 회장을 대상으로 전문가 95명이 매긴 성적표에서 순위를 가른 것은 실적이 아니라 CEO 리스크였다.
[커버스토리] 2026 베스트 금융 리더십
이 기준을 적용하면 국내 금융 산업의 중심축인 은행계 금융지주는 조사 대상에서 빠진다. 지배주주가 없는 소유 분산 기업이기 때문이다. 자산 규모로 국내 최상위권에 속하고 수천만 명의 금융소비자와 직접 맞닿아 있는 조직의 리더십이 정작 평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셈이다.
좋은 리더십의 조건을 묻는다
또한 기존 대기업집단과 금융그룹에 대한 조사를 같은 시기, 같은 응답자, 상당 부분 동일한 평가 항목으로 실시하면 총수 경영과 소유 분산 체제를 나란히 견줘볼 수 있다. 우열을 판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두 체제가 각각 어떤 지점에서 강하고 어디에서 취약한지를 확인하고, 한국 기업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를 짚어보자는 것이다. 오너의 유무를 넘어 ‘좋은 리더십’의 조건을 묻는 작업인 셈이다.
평가는 크게 4개 항목 평가(80점 만점)와 CEO 리스크 평가(20점 만점)로 나눠 진행했다. 항목 평가는 경영 전문성과 자질(비전·위기 관리·수익 창출), 지배구조 투명성과 책임성(이사회 독립성·CEO 승계·견제), 이해관계자 경영(주주 가치 경영·윤리·사회적 책임), 금융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금융사고·불완전판매·책무구조도) 등으로 각 20점씩 배점을 뒀다.
배점 구조는 베스트 오너십(항목 평가 90점·오너 리스크 10점)과 다르다. 평가 대상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너 경영자는 지분을 통해 지위가 뒷받침되는 만큼 리스크가 발생해도 곧바로 거취로 이어지지 않는다. 반면 금융지주 회장은 임기가 정해진 전문경영인이다. 금융사고나 내부통제 실패, 승계 절차를 둘러싼 논란은 연임 여부와 직결되고 때로는 임기 중 교체로도 이어진다. CEO 리스크가 리더십 평가에서 차지하는 실질적 비중이 오너 경영자보다 크다고 본 이유다.
‘금융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 항목을 추가해 별도로 둔 것도 금융업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다. 금융 회사의 사고는 해당 기업의 손실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 피해로 직결되며, 규모에 따라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 문제로 번진다. 최근 몇 년간 대규모 손실을 부른 파생상품 불완전판매와 잇단 금융사고가 이를 보여줬다. 2024년부터 시행된 책무구조도는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에 명확히 하도록 해 내부통제를 법적 의무로 끌어올렸다.
CEO 리스크 평가는 최근 1년간 CEO 리스크가 증가·감소한 금융그룹과 지배구조가 개선·악화한 금융그룹을 서술형으로 응답받아, 순지명 건수를 20점 만점으로 환산했다. 설문 응답자 본인이 소속된 금융그룹 회장에 대한 평가는 공정성을 위해 집계 과정에서 제외했다.
이번 조사에서 종합 평가 1위와 2위의 희비는 CEO 리스크 평가가 갈랐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총점 97.69점)이 종합 1위의 왕좌에 올랐는데, 2위인 양종희 KB금융 회장(총점 96.12점)과의 점수 차는 1.57점에 불과했다. 진 회장은 8명의 금융그룹 회장 중 유일하게 CEO 리스크 평가 점수가 20점 만점을 기록하면서 양 회장을 앞지를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설문 응답자들은 진 회장이 올해 사외이사 전원의 표결로 연임을 확정해 승계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데 높은 점수를 줬다. 사상 최대 실적으로 리딩뱅크 경쟁에서 선두 위치를 탈환한 데다, 그룹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평가 요소였다. 더불어 주주 환원 정책을 확대하고 투명한 이사회 운영을 통해 시장의 믿음을 회복한 것이 CEO 신뢰도와 지배구조 개선에 좋은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다만 항목 평가에서는 양 회장에 이어 4개 항목 모두 2위를 기록했다. 진 회장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항목은 경영 전문성과 자질(4.16점·평균 점수)이었다. 이어 이해관계자 경영(4.05점), 지배구조 투명성과 책임성(3.8점), 금융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3.41점) 순으로 나타났다.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항목 평가는 4개 항목 모두 1위를 차지했지만, 종합 점수에선 2위로 내려왔다. CEO 리스크 평가가 16.12점으로, 20점 만점을 기록한 진 회장에 3.88점 뒤처졌기 때문이다.
설문 응답자들은 “금융당국이 CEO 연임 1회 제한·주총 요건 강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KB금융 회장 인선이 진행돼, 양 회장이 제도 변경 리스크에 직접 노출됐다”는 분석을 내놨다. 더불어 ‘CEO 선임 절차의 독립성 논란’, ‘지배구조 개선안 적용 여부의 불확실성’ 등도 CEO 리스크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결과적으로 양 회장은 ‘2026 베스트 금융 리더십’ 조사 이후인 9월 11일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진행한 차기 회장 최종 후보 선정에서 탈락했다. 경영 실적이 뛰어나 연임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되던 양 회장의 낙마는 금융계에서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실제 KB금융의 당기순이익은 양 회장이 취임한 2023년 4조6319억 원에서 2024년 5조782억 원, 지난해 5조8430억 원으로 상승곡선을 탔다. 올 상반기에는 반기 기준 최대 순이익인 3조8850억 원을 기록했다.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23년 9.18%에서 2024년 9.72%, 지난해 10.86%, 올 상반기 14.09%로 개선됐다.
과거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됐던 함 회장은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단을 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털어낸 바 있다. 설문 응답자들은 함 회장의 사법 리스크 완화로 지배구조가 안정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함 회장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확정받았는데, 이는 이사회의 적격성·책임성 평가 측면에선 부담으로 작용될 만한 요소라는 지적이다.
2연임 중인 함 회장이 연령 제한에 부딪혀 추가 연임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도 CEO 리스크 평가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함 회장은 1956년생으로 오는 2028년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만 70세를 넘는다. 하나금융의 승계 프로그램이 미흡하다는 점도 부정적 요소로 꼽혔다. 2025년 일었던 ‘셀프 연임’ 논란이 여전히 CEO 리스크로 잔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와 함께 함 회장의 장기 성과급도 부정 평가 요인으로 언급됐다. 함 회장의 올 상반기 보수는 19억2200만 원으로, 4개 금융 회장 중 가장 많았다. 급여 4억5000만 원, 상여 4억7000만 원, 장기성과급 10억200만 원을 합친 금액이다.
지역 금융 1위에 iM금융 황병우
지역 금융 1위이자 종합 4위를 차지한 주인공은 황병우 iM금융 회장(총점 73.4)이다. 과거 대구 지역을 기반으로 삼았던 대구은행과 DGB금융지주는 시중은행 전환을 계기로 사명을 ‘iM’으로 변경하고 32년 만에 전국구 금융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이 과정을 황 회장이 이끌었다. 5대 금융으로 꼽히는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7위), NH농협금융 이찬우 회장(8위)을 종합 순위에서 크게 제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황 회장은 이해관계자 경영(3.42점) 항목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반면, 금융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3.21점)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CEO 리스크 평가 점수는 5.67점으로, 종합 순위와 동일한 4위로 나타났다. 시중은행 전환 이후 그룹에 대한 리더십을 확립하고, 전문성을 갖춘 주주 추천 사외이사의 확대로 견제 기능을 보강했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자산 확대 국면에서도 위험가중자산(RWA)을 보수적으로 통제해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개선하고, 지방 금융지주에 대한 관치·내부통제 지적을 줄였다는 분석이다.
반대로 시중은행 전환 이후 지배구조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황 회장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연임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안이 지연돼 iM금융의 경쟁적 승계 절차가 어떻게 운영될지 불확실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종합 5위와 6위에는 또 다른 지역 금융지주 수장인 빈대인 BNK금융 회장(총점 65.58점)과 김기홍 JB금융 회장(총점 58.19점)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종합 5위 이하의 금융지주 회장들은 모두 CEO 리스크 평가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기록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빈대인 회장의 CEO 리스크 평가 점수는 -1.79점으로, 연임 과정에서의 공정성 논란이 대표적인 리스크로 꼽혔다. 지난 3월 연임에 성공한 빈 회장은 선임 과정에서 ‘CEO의 이사회 참호 구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응답자들은 폐쇄적 경영에 대한 지적도 제기했다. 주요 주주가 제안한 JB금융과의 합병 타당성 검토를 이사회 차원에서 거부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기능이 미흡하다는 의견도 반복됐다.
김기홍 회장은 장기 연임(3연임), 이사회 독립성 논란 등으로 CEO 리스크 평가에서 마이너스 점수(-12.24점)를 받았다. 다만 경영 전문성과 자질(3.87점) 항목에선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 3857억 원, ROE 13%로 사상 최대 성과를 낸 것이 항목 평가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응답자들은 높은 ROE를 유지하고 주주 친화 정책을 지속하는 것을 긍정적인 요인으로 언급했다. 실적과 주주 환원 성과가 뒷받침되며 CEO 관련 분쟁 리스크가 축소됐다는 분석이다.
‘국내 5대 금융그룹’으로 거론되는 우리금융과 NH농협금융은 이번 조사에서 하위권에 그쳤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총점 42.96점)은 종합 7위를 기록했는데, 그중에서도 금융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2.56점) 항목이 최하점을 기록했다. CEO 리스크 평가도 -19.4점으로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는데, 각종 금융 사고로 인해 미흡한 내부통제와 이사회·감사 조직의 견제 기능에 대한 의심이 확대되고 있다는 게 응답자들의 의견이었다. 우리은행은 내부 직원의 700억 원대 횡령 사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사기 사건 등 대형 금융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종합 8위는 이찬우 NH농협금융 회장(총점 33.89점)으로, 이 회장 역시 금융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2.74점) 항목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 회장의 CEO 리스크 평가 결과는 전체 금융지주 중에서 가장 낮은 -26.87점이다. 이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농협중앙회의 ‘종속적 지배구조’라는 한계가 해소되지 않았고, 반복적인 금융사고 이력과 계열사 경쟁력 하락으로 브랜드 평판이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농협중앙회장의 리스크가 지속되는 가운데, 계열사의 실적 불균형까지 더해지며 ‘지주의 독립성 훼손’과 ‘평판 부담’이 동시에 작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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