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어피니티, ICC 판단 두고 각각 ‘자신들의 승리’ 해석…그 사이 IPO는 무산

[비즈니스 포커스]
교보생명 본사 전경.(사진=연합뉴스)
교보생명 본사 전경.(사진=연합뉴스)
교보생명의 최대 주주인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2012년부터 2대 주주인 어피니티 컨소시엄과의 분쟁을 이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의 지난해 기업공개(IPO)는 무산됐다. ‘IPO에 대한 주요 주주들의 의견이 상이하다’는 이유에서다.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서라도 교보생명과 신 회장은 ‘풋옵션’에서 촉발한 분쟁을 하루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는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는 물론 한국 법정에서도 소송을 이어 오고 있다. 신 회장이 어피니티 관계자들과 회계사들을 고발한 2심 선고를 앞둔 시점에서, 양측 간 소송전을 되짚어 봤다.

▲분쟁의 시작은?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교보생명 지분 24%를 매각할 때 신 회장이 끌어들인 재무적 투자자(FI)다. 어피니티,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 구성됐다.

신 회장은 2012년 지분 24%가 시장에 나오자 경영권 방어를 위해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지분에만 투자하는 백기사가 필요했다. 이 백기사 역할을 맡은 것이 어피니티 컨소시엄이다.

이에 따라 2012년 9월 어피니티컨소시엄은 교보생명의 최대 주주인 신 회장과 계약하며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에 매입했다. 그 대신 3년 안에 IPO 투자금을 회수하고 IPO가 불발되면 풋옵션(특정한 시기에 미리 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하지만 약속한 기한이었던 2015년 9월까지 IPO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어피니티는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피니티는 2018년 10월 신 회장을 상대로 주당 40만9000원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이는 당시 매입 원가였던 24만5000원의 약 두 배 가까운 가격이다.

가격 산정이 터무니없이 높다고 판단한 신 회장은 어피니티의 풋옵션 행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이에 따라 어피니티는 2019년 3월 ICC에 중재를 신청했다. 교보생명과 어피니티 간 기나긴 공방의 시작이었다.

▲ICC는 누구의 손을 들었나

ICC는 2021년 9월 “최대 주주(신창재 회장)는 어피니티가 제출한 40만9000원이라는 가격에 풋옵션을 매수하거나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재판 결과는 교보생명 측의 완승은 아니다. 어피니티가 가지고 있는 풋옵션 권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특히 ICC는 신 회장이 풋옵션 조항을 이행했더라먼 분쟁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어피니티의 중재 비용과 변호사 비용 절반을 부담하라고 판정했다.

즉 ICC는 어피니티 컨소시엄이 풋옵션 권리를 지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신 회장 측이 풋옵션 가격으로 책정된 40만9000원을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고 판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 교보생명과 어피니티는 중재 결과를 두고 모두 ‘자신들의 승리’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국제 중재는 법원의 판결과 달리 강제성은 없지만 일종의 계약으로 구속력이 있다. 이에 따라 중재 판정을 근거로 삼아 해당 국가의 법원에서 집행 판결을 받아 강제 집행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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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이 회계사를 고발한 이유는

교보생명은 이에 맞서 풋옵션의 공정 시장 가치(FMV)를 산출할 때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이 평가 기준일을 어피니티에 유리하게끔 적용했다며 2020년 4월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회계사 3명과 어피니티 소속 법인 관계자를 허위 보고 등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2월 10일 1심에서 재판부는 회계사 3인과 어피니티 소속 법인 관계자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어피니티 측이 승기를 잡은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당시 1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공인회계사회 윤리조사심의원회와 윤리의원회의 조사 결과다. 한공회 윤조심위와 윤리위는 안진 회계사들에 대한 조사를 최종 ‘조치 없음’으로 종결지었다.

▲2심의 향방은

그런데 2심 결정을 앞두고 공판에 출석한 심의 위원이 어피니티와 안진 회계사들의 공모 정황이 담긴 244건의 e메일 증거 자료를 본 적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e메일에는 어피니티와 안진이 결국 소송으로 갈 확률이 높으니 가능한 한 유리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결과 값을 높이자고 공모한 내용이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심의 위원들이 졸속으로 조사를 종결 지은 게 아니냐며 징계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2심 재판부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2022년 11월 23일 벌어진 2심 결심 공판에서는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와 어피니티 컨소시엄 관계자들에게 1심과 같은 최고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어피니티가 교보생명 지분 24%에 투자하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허위의 가치 평가를 통해 투자 손실을 8000억원대 투자 이익으로 둔갑시켜려다 실패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공인회계사법이라는 행정 법규 위반으로 기소돼 유무죄가 다퉈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총 1조원의 경제적 이익을 노린 대형 경제 범죄”라고 짚었다.

어피니티 임직원 2인과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3인의 2심 공판의 선고 기일은 2월 3일로 예정됐다. 1심에서는 피고인들의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과연 2심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교보생명의 IPO는 왜 무산됐나

교보생명은 ICC의 판정에 따라 주주 간 분쟁이 종식된 것으로 판단하고 같은 해 12월 상장 예비 심사를 신청했다.

하지만 6개월 만인 2022년 7월 한국거래소는 미승인 결정을 내렸다. 한국거래소는 교보생명이 어피니티 등과 풋옵션 분쟁 등 소송을 진행하는 등 상장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또 어피니티는 풋옵션 실행에 대한 강제력을 부여받기 위해 2022년 2월 28일 ICC에 2차 중재 신청을 했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주주 간 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교보생명의 IPO 무산은 벌써 세 번째다. 2015년에는 시장 침체, 2018년에는 어피니티와의 국제 중재로 제동이 걸렸다. 어피니티와의 분쟁이 두 번 발목을 잡은 것이다. 가장 최근의 심사 때는 신 회장이 직접 거래소를 찾아 IPO 필요성을 설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IPO가 보류된 것에 대해 교보생명은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 심사 미승인 사유가 해소돼 IPO를 재추진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여전히 IPO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업계에서는 이 사건이 ‘풋옵션’에서 출발한 만큼 교보생명의 상장을 통해 정확한 가치를 가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어피니티 측은 사전 협의 없는 IPO를 반대하고 있다.

2대 주주인 어피니티의 반대로 교보생명은 거래소에서 ‘IPO에 대한 주요 주주들과 이해관계인들의 주장이 상이한 상태에서는 상장을 허가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듣게 됐다. 결국 어피니티와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는 한 교보생명의 IPO는 무기한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