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는 운전석이 빈 차가 승객을 태우고, 텍사스 사막에는 무인 대형 트럭이 화물을 나른다. 자율주행은 이제 '되느냐 안 되느냐'의 시대를 지나 '얼마나 빨리 커지느냐'의 시대에 들어섰다.
[스페셜] 무인차의 시대
골드만삭스 리서치는 지난해 7월 보고서에서 의미심장한 한 줄을 남겼다. “자율주행차는 라이드 셰어(승차 공유)와 트러킹 양쪽 모두에서 이미 도착했다. 투자자들의 핵심 관심사는 이제 ‘기술이 작동하느냐’가 아니라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커지느냐’다.” 이 한 문장이 현재 미국 자율주행 산업의 국면을 정확히 요약한다.
‘AI 드라이버’ 레이스가 시작됐다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하다. 글로벌 로보택시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8억~20억 달러 수준이었는데, 2030년에는 440억~104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 기관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연평균 성장률(CAGR)이 70~90%대라는 점에서는 거의 일치한다. 이 정도 성장률은 2020년대 초반의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2023~2024년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 성장기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이 폭발적 성장의 배경에는 세 가지 구조적 변화가 있다. 첫째, 하드웨어 비용의 급격한 하락이다. 자율주행의 '눈' 역할을 하는 라이다(LiDAR) 센서 가격은 2012년 대당 7만 5000달러에서 최근 수백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대표적인 자율주행차의 마일당 감가상각 비용은 2025년 약 35센트에서 2040년 15센트로, 보험 비용은 같은 기간 50센트에서 23센트로 낮아질 전망이다.
셋째, 규제 환경의 변화다. 미국에서는 텍사스,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등의 주 정부가 자율주행차의 상업 운행을 허가하는 규제 프레임워크를 정비했다. 캘리포니아 공공시설위원회(CPUC)는 유료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 허가를 부여했고,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죽스(Zoox)의 핸들 없는 전용 차량에 대한 연방 안전 기준 면제 심사를 진행 중이다. 영국 정부는 올봄 자율주행 상용 파일럿을 개시하며, 2035년까지 3만8000개의 일자리와 420억 파운드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 자율주행 생태계는 어떤 모습일까. 크게 네 가지 레이어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로보택시 서비스 레이어로 웨이모, 테슬라, 죽스 등이 직접 승객을 태우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두 번째는 자율주행 트러킹 레이어로, 코디악(Kodiak AI)과 오로라(Aurora Innovation)가 실제 상업 운행을 시작했다. 세 번째는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인프라 레이어로, 어플라이드인튜이션(Applied Intuition)처럼 완성차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에 시뮬레이션과 자율주행 운영체제(OS)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곡괭이와 삽' 역할을 하고 있다. 네 번째는 AI 소프트웨어 스택 레이어로, 웨이브(Wayve) 등이 OEM에 자율주행 AI 소프트웨어를 라이선스하는 기업 간 거래(B2B) 모델을 운영한다.
2024년 5월, 웨이모는 주당 5만 건의 유료 로보택시 탑승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은 올 3월, 그 숫자는 주당 50만 건으로 정확히 10배가 됐다. 미국 10개 도시에서 운영 중이며, 지난해 한 해 동안 1500만 건 이상의 유료 탑승을 제공해 누적 2000만 건을 돌파했다. 올 연말 목표는 주당 100만 건이다.
에디슨 유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는 “웨이모는 진정한 무인 배치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비용이 많이 드는 라이다, 레이더, 카메라 센서 어레이에 크게 의존하는 기술 스택이 확장의 병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웨이모의 접근법은 ‘정밀하지만 비싸다’. 웨이모는 라이다, 레이더, 카메라를 결합한 센서 융합 시스템으로 실시간 3차원(3D) 모델을 구축한다. 레이저 펄스로 거리를 측정하는 라이다는 저조도 환경이나 복잡한 도시 환경에서 카메라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정밀도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각 도시에 대한 상세한 사전 매핑(HD 맵)을 필요로 한다. 새 도시에 진출하려면 먼저 모든 거리를 정밀하게 지도화해야 하고, 이 과정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수반된다.
차량 규모도 주목할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NHTSA에 보고된 데이터에 따르면, 웨이모는 5세대 자율주행 시스템을 탑재한 약 3067대의 로보택시를 운용하고 있다. 이 숫자는 수개월간 큰 변동 없이 유지됐는데, 같은 기간 탑승 건수는 급증했다. 이는 차량당 가동률이 크게 개선됐음을 의미한다. 빈 차량이 도로를 배회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매출을 올리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웨이모는 제조 파트너인 마그나와 애리조나 공장을 확장해 연말까지 2000대 이상을 추가 생산할 예정이며, 곧 출시될 6세대 시스템은 지크르(Zeekr)의 미니밴 플랫폼 '오하이(Ojai)'와 현대 아이오닉5에 탑재된다. 목표는 ‘연간 수만 대 규모’의 완전 자율주행차 생산이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NHTSA와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웨이모 로보택시가 스쿨버스 주변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보인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 올 1월에는 산타모니카에서 학교 근처 어린이를 시속 6마일로 충격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대규모 정전 사태 때 차량들이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 '벽돌'이 돼 버리는 사태도 있었다. 교통 신호가 작동하지 않자 차량들이 움직이지 못했고, 경찰과 소방관이 투입돼 차량을 치워야 했다. 이런 사건들은 도시 인프라와 로보택시의 상호작용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부각시켰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웨이모의 연환산 매출은 3억5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수천 대의 고가 차량 운용, HD 맵(고정밀 지도) 구축, 원격 운영자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수익성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원격 운영자 1명이 약 3대의 차량을 관리하지만, 2030년에는 10대, 2040년에는 35대까지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해, 장기적으로 원가 구조가 크게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웨이모의 위치는 확고하다. 누적 1억2700만 마일의 완전 자율주행에서 인간 운전자 대비 심각한 부상 사고가 90% 감소했다는 안전 데이터는, 규제당국과 도시 정부를 설득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우리는 더 이상 개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상업적 현실을 확장하고 있다.” 웨이모 공동 최고경영자(CEO) 테케드라 마와카나의 말은 이제 빈말이 아니다.
테슬라, 카메라 하나로 달린다
웨이모가 정밀한 센서 융합과 HD 맵으로 ‘안전한 섬’을 하나씩 넓혀 가는 전략이라면, 테슬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고가의 라이다와 레이더를 과감히 제거하고, 카메라만으로 자율주행을 구현하겠다는 것이 일론 머스크의 오랜 주장이었다. 수백만 대의 테슬라 차량에서 수집되는 방대한 실주행 데이터를 신경망 학습에 투입해, 규칙 기반이 아닌 학습 기반의 주행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비전이다.
머스크는 “초기 생산 속도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겠지만, 결국은 미친 듯이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사이버캡을 10초에 1대씩 생산하는 것이며, 이론적으로는 연간 200만~500만 대 생산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가격은 대당 약 2만5000달러. ‘언박스드(unboxed)’ 공정이라 불리는 새로운 제조 방식을 사이버캡에 처음 적용한다. 상업적 로보택시 서비스는 오스틴에서 올 하반기에 사이버캡으로 시작할 예정이며, 이후 달라스, 휴스턴, 피닉스, 마이애미, 라스베이거스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두 회사의 접근법은 자율주행 산업의 가장 근본적인 기술적 논쟁을 대변한다. 웨이모는 라이다와 레이더와 카메라의 센서 융합, 도시별 HD 맵 사전 구축, 회사 소유 차량 직접 운영 모델이다. 안전성은 증명됐으나, 새 도시마다 막대한 사전 투자가 필요하고, 차량 단가가 높다.
테슬라는 카메라 온리, 대규모 함대 데이터 기반 신경망 학습, 궁극적으로 개인 소유 테슬라 차량이 로보택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델이다. 확장성은 잠재적으로 뛰어나지만, 카메라만으로 라이다 수준의 안전성을 달성할 수 있는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규모 면에서의 격차는 크다. 웨이모는 주당 50만 건, 10개 도시, 약 3000대. 테슬라는 10대 무인 차량, 1개 도시. 그러나 테슬라의 제조 역량과 사이버캡 양산이 본격화되면, 이 격차가 빠르게 좁혀질 수 있다는 것이 테슬라 진영의 논리다.
죽스, 아마존의 조용한 승부수
로보택시 경쟁에서 종종 간과되지만, 가장 독특한 접근법을 가진 회사가 있다. 아마존이 2020년에 인수한 죽스다.
죽스의 차량을 처음 보면 누구나 한번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토스터'라는 별명답게, 앞뒤 구분이 없는 양방향 설계에 스티어링휠도 페달도 없다. 4명의 승객이 마주 보고 앉는 캐리지형 좌석, 개별 스크린, 4존 에어컨, 액티브 서스펜션을 갖추었다. 죽스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제시 레빈슨은 “지난 100년간 설계된 자동차는 모두 인간 운전자를 위한 것이었다”며 “죽스는 처음부터 승객만을 위해 설계됐다”고 강조한다.
죽스의 가장 큰 과제는 유료 서비스 전환이다. 현재까지 모든 탑승은 무료다. 아이차 에반스 CEO는 “특히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유료 전환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지만, 이를 위해서는 NHTSA의 연방 안전 기준 면제 승인이 필요하다. 우버와도 손잡아 올여름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죽스 로보택시를 호출할 수 있게 되며, 로스앤젤레스는 2027년 중반이 목표다.
캘리포니아 차량국(DMV)의 지난해 자율주행 디스인게이지먼트(자율주행 중 인간이 개입한 횟수) 보고서에서 죽스는 인상적인 성적을 냈다. 6만682마일당 1회의 인간 개입이 발생해, 운행 환경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웨이모(1만9234마일당 1회)보다 적은 개입이 발생했다. 총주행 거리는 121만3646마일로 웨이모에는 못 미치지만, 기술적 안정성 면에서는 업계 최고 수준을 입증했다.
레빈슨은 “우리는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만으로 수천억 달러 규모의 회사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다만 아마존의 2.4조 달러 시가총액에 비하면, 주크스가 아마존의 실적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기까지는 “최소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도 인정했다.
사막의 무인 트럭, 미국 물류 동맥을 바꾼다
로보택시가 도시의 승객을 태운다면, 자율주행 트럭은 미국 경제의 동맥인 화물 운송을 혁신하려 한다. 이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상업화에 성공한 기업이 코디악이다.
2018년 돈 번넷이 설립한 코디악은 지난해 9월 스펙(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을 통해 나스닥에 상장됐다. 핵심 고객은 텍사스 퍼미안 분지에서 프랙샌드(수압파쇄용 모래)를 운반하는 아틀라스 에너지 솔루션즈다. 2024년 12월 아틀라스에 첫 무인 대형 화물트럭(클래스 8)을 인도하고 상업 운행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자율주행 트럭 업계 최초의 진정한 상업적 무인 운행이었다.
코디악의 기술은 '코디악 드라이버(Kodiak Driver)'라는 AI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에 기반한다. 독자적인 센서포드, AI 컴퓨트, 안전 컴퓨트(ACE), 그리고 이중화된 조향과 제동 시스템으로 구성되며, 차량 제조사에 구애받지 않는 모듈러 설계가 특징이다. 로우시 인더스트리스와의 제조 파트너십을 통해 미시간 리보니아에 전용 생산 라인을 구축했고, 올 연말까지 수백 대 규모로 생산을 확대할 예정이다.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에서 올해 발표된 보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도 중요하다. 보쉬가 센서, 조향 기술 등 양산 등급 하드웨어를 공급하고, 코디악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통합을 담당한다. 보쉬의 하드웨어는 기존 트럭 생산 라인에서도, 사후 개조(upfit) 방식으로도 장착할 수 있어, 자율주행 트럭의 대량 보급에 필수적인 유연성을 제공한다.
번넷 CEO는 “자율주행 기술의 진짜 테스트는 주행 단계가 아니라 엔드포인트”라고 말한다. 트럭이 물류 센터에 도착해서 트레일러를 분리하고, 검사를 받고, 다시 연결하는 과정, 이 마지막 단계의 자동화가 시장 침투의 열쇠라는 것이다. 코디악은 현재 고속도로 노선에서도 안전 관찰자가 탑승한 상태로 운행 중이며, 올 하반기에는 안전 운전자를 제거하고 완전 무인 고속도로 운행을 시작할 목표다.
자율주행의 드림팀, 600마일 고속도로 무인 질주
자율주행 트러킹에서 코디악과 함께 양대 축을 이루는 기업이 오로라다. 구글 자율주행차 프로젝트(현 웨이모)의 전 수장 크리스 엄슨, 테슬라 오토파일럿 전 수장 스털링 앤더슨, 우버 ATG의 전 수장 드류 배그넬이 공동 창업한, 말 그대로 자율주행 분야의 드림팀이다. 나스닥에 상장돼 있으며, 핵심 기술은 트럭과 승용차 등 다양한 차종에 적용 가능한 범용 자율주행 컴퓨터 시스템 '오로라 드라이버(Aurora Driver)'다.
오로라의 차세대 하드웨어에 탑재된 퍼스트 라이트(FirstLight) 라이다는 1000m 탐지 범위를 갖추고, 100만 마일 이상의 내구성을 목표로 설계됐다. 볼보 VNL 오토노머스와 인터내셔널 LT 시리즈 대형 화물트럭에 통합되고 있으며, 독일 기술 기업 아우모비오(AUMOVIO)와의 파트너십으로 2027년까지 수만 대 규모의 배치가 가능한 하드웨어를 준비하고 있다.
코디악이 산업용 오일필드 자율주행에서 고속도로로 확장해 가는 반면, 오로라는 고속도로 장거리 트러킹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운영 영역을 넓히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접근 경로는 다르지만, 두 기업 모두 “자율주행 트럭이 물리적 AI 혁명의 최전선”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한다.
곡괭이와 삽을 판 자가 웃는다
골드러시 시대에 가장 확실하게 돈을 번 사람들은 금을 캔 광부가 아니라 곡괭이와 삽을 판 상인이었다. 자율주행 산업에서 그 역할을 하는 기업이 바로 어플라이드인튜이션이다.
2017년 카사르 유니스와 피터 루드비히가 공동 설립한 이 실리콘밸리 기업은, 원래 자율주행차의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회사로 시작했다. 그러나 불과 수년 만에 자율주행 OS,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스택, 데이터 엔진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상위 20대 완성차 OEM 중 18곳의 고객사를 확보했다. 미 군 및 동맹국 군대도 고객이다. 기업 가치 150억 달러, 추정 매출 약 8억 달러. 포브스는 두 공동 창업자를 억만장자로 선정했다.
최근의 주요 파트너십이 이 전략을 잘 보여준다. 고마쓰(Komatsu)와의 파트너십은 고마쓰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술 투자로, 광산용 차세대 지능형 차량에 어플라이드인튜이션의 비히클(vehicle) OS,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AI 도구를 통합한다. 올 3월 어플라이드인튜이션은 엔비디아 GTC에서 엔비디아와 협업을 통해 최적화된 L2+ ADAS 스택을 OEM에 제공한다고 발표하며, 엔비디아의 추천 소프트웨어 공급자로 인정받았다.
LG이노텍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카메라, 라이다, 레이더 센서를 어플라이드인튜이션의 시뮬레이션 환경 및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과 통합하는 것으로, 미국, 유럽, 일본, 한국에서 센서 검증을 진행한다. 스텔란티스와는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를 AI로 혁신하는 '캐빈 인텔리전스'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국방 분야로의 확장도 눈에 띈다. SNC(Sierra Nevada Corporation)와 차세대 자율 국방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있으며, 미 국방부의 2026 회계연도 자율주행 예산은 134억 달러에 달한다. 자동차부터 국방, 트럭, 건설, 광산, 농업까지 '지구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기계에 지능을 부여한다'는 것이 어플라이드인튜이션의 비전이다.
어플라이드인튜이션의 진정한 강점은 '생태계의 촉진자' 역할에 있다. 완성차 OEM들은 테슬라처럼 수직 통합할 역량도, 웨이모처럼 처음부터 자율주행을 개발할 시간도 없다. 어플라이드인튜이션은 이들에게 즉시 사용 가능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스택과 시뮬레이션 인프라를 제공함으로써 빠진 연결고리(missing link)가 되고 있다.
지도 없이 500개 도시를 달린 AI 드라이버
미국 기업은 아니지만, 자율주행 산업의 판도를 바꿀 잠재력을 가진 기업으로 영국의 웨이브를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케임브리지대의 머신러닝 박사과정 연구자 알렉스 켄달이 설립한 런던 본사의 스타트업이다. 올 2월 시리즈 D에서 15억 달러를 조달하며 기업 가치 86억 달러를 기록했다. 소프트뱅크,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우버, 메르세데스-벤츠, 스텔란티스, 닛산 등이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웨이브의 접근법은 ‘자율주행차(AV) 2.0’이라 불리며, 웨이모식의 전통적 자율주행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웨이모 등 AV1.0은 HD 맵과 수작업 규칙, 도시별 엔지니어링, 고가 센서 어레이에 의존한다. 웨이브의 AV2.0은 엔드투엔드 딥러닝, 카메라 기반, 맵리스(mapless), 데이터로부터 학습하는 범용 AI 드라이버를 지향한다.
올해의 핵심 이정표는 두 가지다. 런던에서 우버와 함께 레벨 4(L4) 로보택시 상용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 첫 번째다. 영국 정부가 자율주행 상용 파일럿을 올봄으로 앞당기면서 가능해졌으며, 유럽 최초의 본격적인 로보택시 서비스가 될 전망이다. 두 번째는 닛산, 우버와 함께 올 하반기 도쿄에서 닛산 리프(LEAF) 기반 로보택시 파일럿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L2+(레벨 2+) 수준의 소비자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출시해 메르세데스-벤츠, 스텔란티스 등 완성차 OEM에 AI 드라이버를 라이선스할 계획이다.
웨이브 접근법의 강점은 확장성이다. 웨이모가 도시 하나를 추가하는 데 수개월의 매핑과 수백만 달러가 드는 반면, 웨이브는 이론적으로 AI 모델의 일반화 능력만으로 새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우버는 시리즈 D에 참여하며 향후 10개 이상의 글로벌 시장에서 웨이브 기반 로보택시를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물론 웨이브의 기술이 실제 상용 서비스에서 웨이모 수준의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런던의 좁고 복잡한 중세 도로에서의 첫 번째 상업 서비스가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장밋빛 미래 앞에 놓인 세 가지 현실
자율주행 산업의 고성장 전망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대한 리스크가 존재한다. 우선 안전 사고와 규제 역풍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웨이모의 스쿨버스 관련 조사, 테슬라의 FSD 사고 이력 등은 자율주행 기술의 한계를 상기시킨다. 한 건의 심각한 사고가 산업 전체의 규제 환경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
수익성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웨이모의 연환산 매출이 3.5억 달러를 넘었지만, 160억 달러 투자 대비로는 수익성이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죽스의 CTO도 “몇 년간은 아마존 실적에 유의미한 기여가 어렵다”고 인정했다. 고가의 차량, HD 맵 구축 비용, 원격 운영자 인건비 등이 여전히 부담이다.
경쟁 심화도 변수다. 샌프란시스코에서만 올해 안에 웨이모, 테슬라, 죽스, 우버-누로까지 4개의 로보택시 서비스가 경쟁하게 된다. 과당 경쟁은 각 업체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아울러 웨이모가 운행하는 도시에서 라이드 헤일링 운전자들의 가동률이 전년 대비 2.5% 하락했다는 보고서가 나와, 자율주행 확대에 따른 기존 운전자의 일자리 영향도 사회적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방향성은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에너지·천연자원 리서치 업체인 우드맥켄지는 올해를 업계의 터닝포인트로 지목하며, 10년 안에 글로벌 자율주행 함대가 현재의 10배 규모인 10만 대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가 말한 대로, 질문은 이제 '기술이 되느냐'가 아니라 '시장이 얼마나 빨리 커지느냐'다.
물론, 웨이모의 주당 50만 건은 우버의 지난해 연간 135억 건 탑승과 비교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자율주행이 도시 교통의 주류가 되기까지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탈것의 등장이 아니다. 운전이라는 행위가 인간의 손을 떠나 AI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과정, 자동차가 '운전하는 기계'에서 '태워주는 공간'으로 재정의되는 과정, 그리고 그 위에서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생태계가 탄생하는 과정이다.
변화의 속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 자율주행은 '된다, 안 된다'의 시대를 지나, '얼마나 빨리'의 시대에 들어섰다.
최중혁 팔로알토캐피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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