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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시스템 고장난 한국, 중국의 추격이 두려운 이유[EDITOR's LETTER]
이건희 삼성 회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본으로 떠납니다. “선진국을 배워야 한다”는 아버지(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뜻이었습니다. 가혹한 양반이었지요? 고작 열두세 살짜리에게.3년 만에 돌아왔지만 배운 건 별로 없었습니다. 대학 갈 때가 되자 아버지는 다시 이 회장을 일본으로 보냅니다. “제대로 선진국을 배우고 오라”고 했습니다.이건희의 삶은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승계를 준비하는 17년은 아버지와 장인으로부터 거의 듣기만 하며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회장이 된 후에도 그는 세계적 기업의 CEO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습니다. 배우기 위해 일본 기술자들에게 큰돈을 주고 주말에 초청하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삼성전자에 일본 고문들이 많았던 배경입니다.삼성전자는 이 배움의 과정을 거쳐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다른 한국 기업들도 미국, 일본 기업들을 배워가며 추월했습니다.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덴마크의 농촌부흥운동을 모델로 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해외로 나갔던 1970년대, 1980년대 유학생들은 이후 국내로 돌아와 산업화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은 배움의 열기로 가득 찼던 나라였습니다.이 같은 한국의 발전 모델을 따라 배운 나라가 중국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하지 말라는 국가주도의 성장모델을 벤치마킹하며 미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산업 경쟁력도 높아졌습니다. ‘중국산’이라고 무시하던 시절은 끝났습니다. 국내에서 중국 브랜드의 TV, 와인셀러, 스피커, 헤드셋 등은 흔히 볼 수
2024.03.25 08: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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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적 토론 사라진 한국의 공론장 [EDITOR's LETTER]
프랑스 화가 프라고나르의 ‘그네’란 그림을 아십니까? 볼이 살구빛으로 물든 여인이 치마를 입고 그네를 타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젊은 청년이 숨어서 여인과 눈을 맞추고 있습니다. 뒤에서 그네를 밀고 있는 사람은 나이든 남편. 앞에 놓인 큐피드 상은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듯 입에 손을 올리고 있습니다. 막장 스토리를 아름답게 그려낸 이 그림은 18세기 세계 예술의 중심지를 파리로 옮겨놓은 로코코 양식의 대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곳은 다름 아닌 살롱이었습니다.17세기까지 프랑스는 이탈리아 문화를 추종했습니다. 루이14세의 절대왕정은 고전주의를 기반으로 사회의 미적 취향도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가 1648년 설립된 예술 아카데미입니다. 아카데미는 고전주의 대표화가로 불리는 푸생과 루벤스의 그림을 미적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푸생은 구조와 선 등을 중시하며 규격화되고 염격한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그림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당시 예술에 대한 담론을 주도한 것은 아카데미였지만 유일한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에는 살롱 문화가 퍼지고 있었습니다.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곳곳에 모여 문화와 예술에 대한 토론을 했고, 고전주의에 대한 반론도 싹텄습니다. 비평가들은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논쟁의 결과는 ‘취향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쟁 이후 프랑스 회화는 이탈리아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익숙한 특유의 분위기를 갖게 됩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는 부세, 와토, 프라고나르 등이지요. 이 변화는 주류의 담론장인 아카데미가 아닌 또 다른 공간인 살롱에서 이뤄졌고, 재
2024.03.18 07: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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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빙환과 먼치킨의 유행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EDITOR's LETTER]
[EDITOR's LETTER]2007년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에 빠져 있었습니다.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드라마입니다. 시대의 스토리텔러 아론 소킨이 쓴 각본은 탄탄했고, 모든 캐릭터는 매력적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시즌7까지 몰아 봤습니다. 마지막 시즌에서 히스패닉계 매슈 산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하이라이트이자 종결이었습니다.여운이 남아 있던 2008년 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됐습니다. 흥분해서 블로그에 ‘웨스트윙이 현실이 됐다’란 제목으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깨달음은 ‘문화 콘텐츠에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망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예언의 조각들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넷플릭스도 돌아볼까요? ‘판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신종 바이러스가 갑자기 나타나 세계에 퍼질 것이다. 중국은 주의해야 할 곳 중 하나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연도는 2019년.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해였습니다. 이 밖에 ‘스타워즈’는 과학 분야의 예언서가 됐다는 점을 더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시대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거나 결핍을 채우고 싶은 욕망, 그에 대한 상상이 적절한 비율로 혼합되면 히트작도 되고, 예언서도 되는 게 콘텐츠 시장의 속성입니다.한국에서 이 요소들 가운데 상상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켜준 공간은 웹툰과 웹소설일 것입니다. 요즘 이 영역에서는 먼치킨과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안티히어로가 대세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좀
2024.03.11 07: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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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한국 주식시장, 전략상실의 대가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올해 봄으로 가는 길은 유독 거칠게 느껴집니다. 2월과 3월 초 눈과 비도 많이 왔고, 흐리고 추운 날도 많았습니다. 좋은 소식이 별로 없어 사회를 둘러싼 공기도 무겁고 어둡게 느껴집니다.이런 2월에 상하이로부터 날아든 낭보는 통쾌했습니다. 농심 신라면배 바둑대회에서 2000년생 신진서 9단이 우승했습니다. 과정은 극적이었습니다.중국 4명, 일본 1명 남은 상황에서 홀로 상하이로 날아가 모든 상대를 제압했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온 이창호의 ‘상하이 대첩’을 재연했습니다. 중국에서는 “14억 명 중에 뽑힌 5명이 5000만 명 중에 뽑힌 한 명을 못 이기냐”라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철저한 준비와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 이를 기반으로 판을 흔들고,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취하는 전략이 승리 요인이었습니다.신진서를 보며 한국이 갖고 있는 자산을 떠올렸습니다. 사람.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폐허 속에서 국가도 산업도 스포츠도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었습니다.좋은 얘기는 여기까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막막해집니다. 22년 전인 2002년 4월로 가보시죠.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 회의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삼성이 이대로 커 간다면 전 세계 경쟁 기업이 다 덤벼들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무슨 힘으로, 어떤 전략으로 이를 막아야 하는가. 또 우리는 이를 뿌리치고 어떻게 전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이 기막힌 예언 두 가지는 모두 적중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삼성은 질주했고, 강력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됐습니다. “경쟁 기업들이 다 덤벼들 것”이라는 것은 현재 체감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랠리에서 대표기업 삼성전자
2024.03.04 07: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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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인간의 일…연민과 공감의 능력[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얼마 전 전라남도 함평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5일장이 선다기에 구경을 갔습니다. 상설시장 바깥에 있는 노상에서 할머니 대여섯 분이 직접 기른 채소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함께 간 대학생 딸이 느닷없이 돈 1만원을 달라고 했습니다.그리고 홀로 앉아 있는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아흔 살은 돼 보였습니다. 아이는 그 앞에 앉아 한참을 얘기하고 돌아왔습니다.“그냥 드리고 싶었어. 잘 듣지도 못하시는 거 같은데 자꾸 채소를 갖고 가라고 해서 괜찮다고 했어.”그날 내내 할머니와 딸아이가 뭔가를 얘기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세월에 깎여 안쓰러울 정도로 작아져 버린 할머니, 집에서는 자기만 알고 말도 안 듣지만 할머니를 보자마자 무작정 다가간 대학생 딸.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진국이 됐지만, 그 나이에 그 몸을 이끌고 시장을 나와야 하는 누군가의 어머니를 나라가 보살피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노인 빈곤율 OECD 1위 국가 한국도 떠올랐습니다. 딸 세대에게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좁은 취업문을 뚫어야 하고, 미래에는 1년에 100만 명씩 태어난 우리 세대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구나 싶어 착잡했습니다.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좋을 것이라고 믿었고 그런 시대를 살았던 축복받은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의 부채감이랄까.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지는 못할망정 더 힘든 짐만 얹어주고 가겠구나 싶었습니다.그날 밤 집에 돌아와 다큐멘터리 한 편을 봤습니다. 제목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명곡으로 평가받는 ‘USA for Africa’가 녹음된 1985년 1월 28일
2024.02.26 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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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 총선용이라는 지적을 피하는 방법[EDITOR's LETTER]
[EDITOR's LETTER]10여 년 전 장인어른 장례를 치렀습니다. 비가 억수로 퍼붓던 7월. 빈소를 차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슬퍼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쉴 틈도 주지 않고 차례로 종이 한 장씩을 들고 왔습니다. 돈 내는 데 동의하라는 사인이었습니다.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장례를 치렀습니다. 마지막 날 비용을 치르고 영수증 비슷한 걸 이면지로 받았습니다. 뒷면을 보니 장례비용을 치르지 못해 시신을 가져가지 못한 상주에게 보내는 독촉장 비슷한 게 담겨 있었습니다.서글픈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상과 이별하는 것도 돈이 없으면 쉽지 않구나.’ 건강보험이 그렇게 잘돼 있다는 나라지만 죽는 것은 쉽지 않구나 싶기도 했습니다.한국 의료의 아이러니 또는 모순을 들여다보면 이는 극히 일부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때 한국의 의료진과 건강보험을 비롯한 의료체계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사망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코로나19를 가장 잘 극복한 나라라는 찬사도 받았습니다.하지만 이것도 잠시 한국의 의료제도는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의대 정원을 한번에 60% 이상 늘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돌변한 거지요. 말 그대로 반전입니다.한국 의료와 관련된 숫자를 들여다보면 더 신기합니다. 세계 주요 선진국 가운데 국민 1000명당 의사 수는 가장 적습니다. 하지만 국민 한 명이 진료를 받는 횟수는 가장 많습니다. 또 의사 수가 적지만 기대수명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백내장, 관절 등 수술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받을 수 있습니다.의사는 극한의 노동과 적절하지 못한 처우에
2024.02.19 0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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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왜 아파트값은 급등할까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광채가 그녀를 비춘 것은 분명 아니었으나 베르사유 왕비는 더욱 유쾌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의 강림이었다. 생기와 환희로 가득 차 샛별처럼 반짝거리는 그녀를. 오 혁명이라니.”‘보수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에 칼이 겨누어지는 것을 보고 한 말입니다. 그는 프랑스혁명에 대해 “유럽의 영광은 소멸했다”고 한탄했습니다.당연히 누군가 나서 이를 반박했겠지요. “버크는 깃털을 가여워하면서 죽어가는 새는 잊고 있다. 버크는 프랑스의 낡은 정권이 자행한 끔찍한 짓을 감추는 비극적 그림을 스케치했다.” 이 말의 주인공은 진보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머스 페인이었습니다.버크와 페인의 설전은 광대한 분야에서 이뤄졌고, 이를 모아놓은 ‘위대한 논쟁’이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현재 세상의 모든 보수와 진보가 그들의 후예들입니다. 프랑스혁명 후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 후예들은 곳곳에서 다양한 문제에 대해 논쟁 중입니다. 경제만 보면 전통적인 논쟁의 주제인 정부의 역할, 세금 등이겠지요.한국에는 논쟁이 되는 특수한 이슈가 하나 더 있습니다. 부동산입니다. 한국인들의 삶을 들었다 놨다 하는 부동산을 둘러싼 전통적 논쟁에서 양 진영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진보는 규제, 보수는 부양’입니다.진보와 보수의 뇌구조의 차이로 봐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말합니다. “진보의 뇌는 본능적으로 약자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 것에 혐오를 느끼고, 보수의 뇌는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부동산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2024.02.06 07: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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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가 보여준 안되는 조직의 특징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가 뭔지 아십니까.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아닙니다. 설화 맥주입니다. 처음 들어본다고요? 네 중국에서만 팔리니까요. 중국에서 1등 하면 세계 1등 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지난 수십 년간 중국은 엄청난 인구를 바탕으로 모든 분야에서 약진했습니다. 세계적 스포츠 강국으로도 부상했지요.하지만 불가사의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 축구입니다. 아시안컵에서도 예선 탈락했습니다. 중국인들은 분노했다고 합니다.14억 명 중 가장 잘하는 11명 뽑으면 되는데, 왜 중국 축구는 저 모양일까.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만 명당 한 명이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급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는 메시 7000명이 있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안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중국이 축구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였습니다. 축구광 시진핑 주석이 태국에 대패하는 것을 보고 육성 정책을 지시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독재자의 지시는 절대적입니다. 축구클럽 2만 개를 만들고, 초·중학교에서 축구를 필수과목으로 하고, 2030년 아시아를 제패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시작부터 이상하지요? 개인의 취미를 국가 프로젝트로 만든 것 자체가. 이어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이 간부가 되어 자리를 꿰찼습니다.중국 기업들은 구단을 설립하고 스타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수백억원 연봉을 주고 영국 등에서 데려왔습니다. 한때 중국 축구단 연봉은 일본의 6배, 한국의 12배가 됐습니다. 수혜자는 또 있었지요. 중국 선수 몸값도 뛰었습니다. 실력 말고 몸값만. 2019년 평균연봉 10억원에 달하는 구단도 생겼
2024.01.29 07: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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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빚과 나쁜 빚, 악순환 고리 끊기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지난 11일 초저녁. 오랜만에 홍대 앞을 걸었습니다. 길거리는 일부 핫플레이스를 제외하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습니다. 문 닫은 가게가 많았고, 음식점에도 손님이 별로 없었습니다. 같이 걷던 동료에게 “혹시 오늘 월요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목요일이라고 했습니다.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늦은 시간인데 두 명의 젊은이가 멀찍이 떨어져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습니다. 술 때문인가, 왠지 안쓰러워 보였습니다.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으니 한 젊은 후배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세대는 빚과 함께 살아요.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면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다 갚고 집이라도 사면 또 빚을 내야하구요. 학자금이라도 부모가 갚아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삼겹살도 사치인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친구들이 ‘영끌’까지 했다면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습니다.다음 날 편의점 도시락 판매량을 알아봤습니다. 순대국밥 한 그릇에 1만원을 하는 세상, 쪼들리는 사람들의 선택지가 그곳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예상대로 한 편의점에서 작년 한 달에 평균 230만 개가 넘는 도시락이 팔렸습니다. 2022년보다 한 달에 20만 개가 더 나갔습니다.‘악순환’이란 단어가 스쳤습니다. 금리가 올라 이자부담은 늘고, 대출 많은 사람들이 지출을 줄이고, 그 결과 내수 위축으로 음식점 등 자영업자는 더 어려워지고, 고용시장은 더 차가워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발단은 부채였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빚의 무서움을 몰랐던 것은 젊은 세대뿐 아니었습니다. 2000년대초 카드사태로 신용불량자가 400만
2024.01.22 07: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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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의 노예가 됐다 그리고 서사를 잃었다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농업혁명이 인류를 번성시켰다는 상식에 대한 도발이었습니다. 신선했습니다.그는 “수렵채집인보다 농부들이 훨씬 더 힘들게 일했고, 잘 먹지도 못했고, (가축화로 인해) 질병도 더 많이 얻었다”고 했습니다. 혁명의 역습이었습니다.요즘 직장인들의 삶을 돌아보면 새삼 그의 통찰이 대단했음을 느낍니다. 인류는 IT혁명에 흥분했습니다. 우리를 편한 길로 안내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인터넷과 각종 소프트웨어, 스마트폰 앱, 인공지능(AI)까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닌 것 같습니다.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사무실 책상 앞에서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의미 있는 일을 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업무 효율에 1도 보탬이 안 되는 파워포인트는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짧은 쉬는 시간,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 짧은 영상을 봅니다. 아니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남의 삶을 엿보다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잠자리도 핸드폰과 함께합니다. 농업혁명이 인류에게 사기였다면, IT혁명은 직장인들에게 무엇일까요.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수많은 미디어 채널이 생겼지만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 아이러니한 현실.기술의 진보가 우리로부터 앗아간 것은 또 있습니다. 생각과 서사입니다. 과거에는 출근길에 가사 없는 음악(클래식)을 들으며 무언가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담배를 피울 때도 생각이란 걸 했지요. 잠들기 전에도 상상이란 걸 머리맡에 있는 수첩에 뭔가를 끄적이기도 했습니다
2024.01.15 06: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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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왜 CES에 열광할까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4대 강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민족.” 한국인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 중 하나입니다. 돌아보면 그 무모함의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가 대표적입니다. 애플은 당대 세계 최고의 기업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은 삼성이 위대한 기업에 도전해주기를 바랍니다. 애플에 밀리면 삼성 내에서도 휴대폰 사업부는 욕을 먹습니다. 애플에 졌다고 욕먹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오래전에도 한국 기업들은 기술도 없이 일본 기업들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많은 이들이 비웃었지만 결국 일본 전자업체들을 궤멸 직전으로 몰고 간 것도 한국 기업입니다.스포츠도 비슷합니다. 일본 슈퍼스타 한 명의 몸값이 한국 선수단 전체의 몸값을 합친 것보다 높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한·일전은 다르다”며 목 빠지게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걸 이겨버립니다. 이승엽이 홈런 치던 시절 얘기입니다. 굳이 중국, 러시아는 언급할 필요조차 못 느낍니다.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 웬만한 중소기업들의 목표는 모조리 세계 진출입니다. 이 무모함이 한국의 기적 같은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다이너미즘의 원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매년 초 한국인들의 극성스러움이 드러나는 이벤트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람들은 방문단을 꾸려 이 쇼를 관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안 가면 시대에 뒤처진다고 판단한 듯 떼지어 몰려갑니다. 2020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CES 관람객을 보낸 나라로 기록됐습니다.코로나19를 완벽히 벗어
2024.01.08 07: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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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평안이라는 단어의 소중함
시대정신의 변화를 돌아봅니다.1945년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규정한 단어는 생존이었습니다. 분단, 전쟁, 가난 속에 살아남는 게 목표일 수밖에 없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인들은 가난 속에도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함께”,“내 자식은 나처럼 살지 않게 하겠다.” 이후 20년 한국 사회를 지배한 단어는 성장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 120달러 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87년 세계 평균치를 넘어섰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성장의 결실을 나눠야 한다는 분배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경제성장의 과실뿐 아니라 정치 권력도 분배의 대상이었습니다. 1997년 최초의 정권교체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분배의 시대도 일단 막을 내렸습니다.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구조적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자산 격차는 심해지고, 유치원에서부터 경쟁을 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공동체는 훼손됐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라졌고, 이념적 갈등은 극단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최근 20여 년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단어는 각자도생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새해가 밝았습니다. 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올해는 새로운 단어가 많이 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전쟁은 외교로, 분쟁은 협상으로, 극단적 경쟁은 작은 협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아마추어는 프로페셔널로, 강압적 수사는 인권에 대한 존중으로, 부채 폭탄은 연착륙이란 단어로 대체되는 소식을 전하길 기대해 봅니다.한국 사회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직장
2024.01.02 0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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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메시지 전달이며, 메시지 그 자체다 [EDITOR's LETTER]
재앙 같은 해였습니다. 물가는 폭등하고 경제는 추락했습니다. 무역 적자로 외환보유고는 급감했습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민주세력에 대한 강경한 탄압이 시작됐지요.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0년 가까이 지속된 고성장의 시대, 황금자본주의가 막을 내립니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선거에서 여당이 일제히 패배했습니다.오일쇼크가 시작된 1974년 벌어진 일들입니다. 기시감과 미시감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이후 50년은 대한민국이 만든 기적의 시간이었습니다.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 가난 등 현대사에서 겪을 수 있는 고난은 모두 이겨냈지요. 그리고 산업 강국, 문화 강국으로 올라섰습니다.기적의 시간, 경제는 리더십과 팔로십이 어우려졌습니다. 1세대 창업자(파운더)들이 시작한 모험에 근로자들은 인생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내며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폐허에서 제조업에 도전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자원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미국, 일본 등에 기술을 구걸하고, 때로는 밤을 새우며 무언가를 개발했습니다. 국산화에 성공하자 이내 눈을 해외로 돌렸습니다. 무역 강국의 시작이었습니다. 파운더의 시대에 조선업은 세계 1위에 올랐고 현대 정주영 회장은 신화가 됐습니다.이어받은 2세대들은 차원이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주요 무대를 한국에서 글로벌로 옮겼습니다. “한국에서 1위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손에 의해 한국의 기업들은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의 경쟁자들은 줄줄이 파도에 쓸려 나갔습니다. 빅체인지를 통해 창업자보다 큰 성장을 일궈낸 이들을 ‘한국의 리파운더’라고 부릅니다.이건희 삼성 회
2024.01.02 07: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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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무슨 일이 벌어질까 [EDITOR's LETTER]
연말입니다. 오래전부터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는 나이와 비례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10대 때는 시속 10km, 20대 때는 20km, 50대에는 시속 50km의 속도랄까. 올해도 금방 가버렸습니다.요즘은 해가 바뀌는 것을 알리는 전령은 트렌드 책이 아닐까 합니다. 내년을 전망하는 수많은 트렌드 책들. 처음엔 신선했지만 최근엔 감흥이 별로 없습니다. 작위적 용어들의 향연인 듯도 하고. 그럼에도 미래를 보고 싶은 욕망은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잘 팔리는 걸 보면. 우리도 내년 맞닥뜨릴 일들을 상상해 볼까요. 국내에서는 0.7명대까지 떨어진 출산율이 어디까지 내려갈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입니다. 반전을 기대하지만 극적인 결과는 쉽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저출산의 결과 문 닫는 학교와 소멸되는 지방이 늘어나는 것도 시시때때로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될 것입니다. 한 해 출생아 수가 44만 명으로 줄어든 2006년생이 내년 대학입시를 봅니다. 각자도생의 시대 안정된 미래가 보장된 직업에 대한 높은 선호도도 이어질 것입니다. 대학입시에서 ‘의치한약수’ 쏠림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서울시 김포구, 서울시 구리구’ 등 인근 도시들의 서울 편입 논란은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책이 뭐가 나와도 청년들의 삶은 나아지길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높은 체감 인플레이션은 청년들을 더 궁지로 내몰 것입니다.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지 않는 한 영끌해서 샀던 아파트를 내다 팔아야 하는 젊은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물론 부채의 덫은 젊은이들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겠지만. 젊은이들이 허세플레이션 시대에 샀던 명품을 중
2023.12.25 07: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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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에서 인간의 냄새가 난다면[EDITOR's LETTER]
[EDITOR's LETTER]‘동네변호사 조들호’, ‘천원짜리 변호사’, ‘신성한 이혼’ 등등. 변호사를 소재로 한 국내 드라마입니다.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능력 있고, 인간적인 그리고 소규모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의 세계관은 ‘법은 사람이 만든 최소한의 규칙이며, 약자를 보호하는 인간적 면모를 갖고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반면 대형 로펌은 좀 다릅니다. 대부분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람 냄새는 사라지고, 자본과 권력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예외지만. 문화는 대중의 정서를 반영합니다. 대형 로펌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한국에서 그 상징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입니다. 뭔가 비밀스럽고,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렵고, 법 천재들이 모여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 외환위기 이후 많은 기업들이 헐값에 해외로 팔려나갈 때 김앤장이 매수자인 외국 기업 편에서 자문한 것도 그런 이미지 형성에 한몫했습니다. 정부 관료들을 대거 고문으로 영입하며 논란이 된 것도 김앤장이었습니다. “김앤장 인사들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겠다”는 말까지 나왔으니까요.그렇다면 돈과 권력의 논리만으로 오늘날 김앤장과 대형 로펌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을까. 조금 들여다보면 다른 면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특히 그 출발점에서는 말이지요.김앤장 설립자인 김영무 변호사는 유학을 다녀온 후 1973년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차립니다. 그때 나이 31세. 미국, 일본과 비슷한 전문로펌을 만들겠다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기창업을 한 것이지요. 그의
2023.12.18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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