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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이 테일러스위프트보다 앨범 많이 파는 이유

출처: X(옛 트위터) 캡션 : 팬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그룹 세븐틴 'FACE THE SUN' 앨범의 미공개 포카 리스트 출처: SM엔터테인먼트 캡션: 그룹 라이즈의 랜덤 트레이딩 카드 팩 "이런 짓좀 안했으면 좋겠다. 업계에서 (앨범)밀어내기를 알음알음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면 팬들에게 다 부담이 전가된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은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 중에서도 K팝 팬들이 가장 공감하는 내용은 따로 있었다. 앨범 사재기, 팬사인회, 포토카드 등 K팝 산업의 '소비자 착취 구조'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지난 4월 19일 발표한 앨범(261만장)보다 한국 보이그룹 세븐틴이 작년 10월 23일 발매한 ‘SEVENTEENTH HEAVEN(509만장)’이 248만장이나 더 팔렸다. 이를 'K팝의 저력'이라 볼 수 있을까? 스위프트는 이 기록으로 3팝스타 비욘세의 정규 8집 ‘카우보이 카터’ 약 22만8000장을 제치고 빌보드 200의 1위에 올랐다. 영국 밴드 비틀스 다음으로 '빌보드 200' 1위에 많이 오른 가수다.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만큼 전 세계 문화, 사회,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가수지만 놀랍게도 한국 음반 차트에 들어오면 10위권 한참 밖으로 밀려난다. K팝에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방증한다. 한국은 한터글로벌이 전 세계 1100여 판매점의 음반 판매량을 합산해 만든 ‘한터차트’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는 장점이 있어서 발매 일주일간 판매된 앨범 수량을 ‘초동 판매량’(이하 초동)이라고 부르며 집계한다. 이번 스위프트가 빌보드 차트에서 경신한 기록으로는 이 차트에서 20위 정도에 그친다. 5월 1일 기준 역대 초동 순위는 앞서 언급한 세븐틴의 앨범이 1위다. 스트레이키즈가 작년 6월 2일 발매한 ‘★★★★★(5-STAR)’는 약 461만 장으로 2위, 뒤이어 세븐틴이 같은 해 4월 24일 발매한 앨범 ‘FML’이 한 주간 455만 장 팔려 3위다. K팝 음반 시장은 언제부터 이렇게 커진 것일까? K팝 산업 내 ‘음반 인플레이션’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에 시작돼 최근 정점을 찍었다. 한터차트에 따르면 초동을 100만 장 이상 판매한 밀리언 셀러 앨범은 총 55개다. 이 중 2020년 이전에 발매한 앨범은 방탄소년단의 앨범 2개가 전부다. 이후 2020년 3개, 2021년 4개, 2022년 12개, 2023년 29개로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외 콘서트 투어나 굿즈 판매로 수익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여러 엔터사는 앨범 판매를 수익 확보의 핵심 활로로 눈길을 돌렸다. SM엔터테인먼트의 콘서트 수익은 2019년 1065억원을 기록한 이후 2020년 264억원, 2021년 225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음반·음원 판매매출은 2019년 1267억원에서 2020년 1913억원, 2021년 2988억원으로 늘었다. 하이브의 경우 그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콘서트 등 공연매출은 2019년 1910억원으로 전체 32%를 차지했지만 그다음 해인 2020년 코로나 영향 때문에 34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2021년 452억원으로 회복됐고 2022년 2581억원, 2023년 3591억원으로 늘었다. 이에 비해 음반·음원 매출은 더 큰 폭으로 늘었다. 2019년 1083억원에서 2020년 3206억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그 후 2021년 3768억원, 2022년 5519억원, 2023년 9704억원으로 1년 새 두 배씩 늘어나는 추세다. 랜덤 굿즈와 팬 사인회 등을 동인으로 팬덤의 강력한 구매력을 활용해 앨범 판매량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린 덕이다. 마케팅의 수준을 뛰어넘어 팬덤의 충성도를 이용한 상술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작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대표 엔터테인먼트사들을 대상으로 랜덤 굿즈 ‘끼워팔기’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섰다. 지나치게 많은 종류의 ‘포토카드’(이하 포카)를 제작하고 무작위 방식으로 판매하는 등 ‘사행성 상술’을 펼친다는 지적과 소비자 민원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통상 앨범을 구매하면 랜덤으로 한 개 증정했던 포카는 이제 대부분 MD(기획상품)에 따라붙는다. 포카는 신용카드보다 약간 더 큰 크기의 코팅된 카드로 아이돌 가수의 셀카 사진이나 콘셉트 포토가 담겨 있다. 수십 종의 포카를 랜덤으로 내놓고 팬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인기가 많은 멤버의 사진이 담긴 포카는 웃돈을 주고 높은 시세로 거래가 돼 고급 아파트 명칭을 붙여 ‘반포자이 포카’, ‘한남더힐 포카’라고 불리기도 한다. 팬덤 내 수요의 규모를 파악하자 회사는 아예 앨범을 발매할 때 이 포카만 들어 있는 ‘랜덤 팩’을 출시해 판매하기도 한다. 모 남자아이돌 그룹 팬 정모 씨는 “굿즈 중에 ‘랜덤 트레이딩 카드 팩’이 있는데 각자 다른 버전의 포카 2개가 ‘1/멤버 수’ 확률로 들어 있다”며 “앨범의 반도 안 되는 가격이니 원하는 포카를 얻기 위해 애초에 10~20개씩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라고 전했다. ‘줄 세우기’, ‘커리어 하이’ 등 신조어도 앨범 판매 경쟁 과열에 한 몫했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구매자가 수십 장을 한 번에 구매하는 ‘공동구매(공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은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3위권을 차지한 스트레이키즈 초동 수량 중 114만 장 이상, NCT 드림은 107만 장 이상이 중국 공구를 통해 팔렸다. 걸그룹도 중국 공구 의존도가 높다. 작년 5월 ‘MY WORLD’를 발매한 에스파 초동 169만 장 중 102만 장, 같은 해 4월 아이브가 발매한 ‘I’ve IVE’ 앨범 초동 110만 장 중 56만 장, 르세라핌의 ‘UNFORGIVEN’ 초동 125만 장 중 31만 장, (여자)아이들이 비슷한 시기 발매한 ‘I feel’ 116만 장 중 51만 장이 중국에서 팔렸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4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밀어내기’ 또한 그 일환이다. 먼저 앨범 주문을 받고 판매량을 채우는 수법인데 부담은 팬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초동을 비롯한 앨범 판매량이 인기나 영향력의 지표로 작용하니 회사는 높은 판매량을 경신하기 위해 미리 판매량을 정해두고 오랜 기간을 두고 팬 사인회를 수십 회 열거나 미공개 포카 등을 비롯한 랜덤 굿즈를 내놓으며 수량을 채운다. 민 대표의 말처럼 “팬은 샀던 앨범을 사고 또 사고, 갔던 팬 사인회를 가고 또 가야 한다.” 앨범이 많이 팔리고 수출이 늘면 좋다고 할 수도 있다. K팝 인기와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민 대표가 이 문제점을 지적하며 “콘텐츠로 승부 볼 것”을 외친 것을 봐도 이미 이 문제는 업계 내에서도 좋지 않은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판매량이나 기록 경신에 매몰돼 소비자인 팬들에게 랜덤 굿즈 등을 빌미로 구매를 유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시장에는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곧 K팝 산업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진다. 음악성, 신선함, 완성도, 스타성과 별개로 팬들의 과소비에 기대 성장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민 대표는 "밀어내기를 하면 이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수치가 올라가는 건지 시장이 비정상이 된다. 계속 우상승하니까 나중에는 주식 시장도 교란된다"고 했다. 민 대표가 수면 위로 끌어올린 엔터 업계의 병폐다. 임나영 인턴기자 ny924@hankyung.com

카레 왕국 오뚜기 만든 5가지 장면

[스페셜리포트 : 오뚜기가 세운 이정표①] 한국인이 떠올리는 카레는 노란색이다. 원래 그렇지 않다. 카레의 본고장인 인도에서는 주황빛을 띠고, 우리보다 카레가 먼저 정착한 일본에서는 갈색이다. 한국인에게 카레가 ‘노란색’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단 하나, ‘오뚜기 카레’가 노란색이기 때문이다. 1969년 한국 최초로 분말 카레를 출시한 오뚜기는 카레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토마토를 베이스로 하는 인도나 볶은 양파와 브라운루를 베이스로 하는 일본보다 노란빛을 띠는 이유는 강황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매운맛에 집중하고 건강을 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이하 함 회장)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던 1969년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을 수 있게 분말 카레를 세상에 선보였다. 오뚜기 카레가 탄생한 지 55년이 지난 지금도 오뚜기 카레는 분말 카레 시장의 83%, 레토르트 카레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오뚜기가 단순히 ‘착한 기업’으로만 존재했다면 쓸 수 없던 이정표다. 오뚜기 카레는 올해로 출시 55년을 맞았다. 출시부터 지금까지 카레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오뚜기 카레를 만든 장면 5가지를 살펴봤다. 첫 번째 장면 : 관찰과 결심 “카레 생산을 중단하겠습니다.” 1968년 카레에 운명을 걸었던 한 청년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이 떨어졌다. 카레를 출시한 지 1년 만에 생산이 중단됐다. 당시 카레는 한국인에게 생소한 음식이었다. 형편이 좋은 부유층이나 일부 고급식당에서만 판매될 뿐 카레가 어떤 음식인지, 무슨 맛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달러 조금 넘던 때였다. 하루 800~1000개를 만들어 내놨지만 시장은 조흥화학의 카레를 외면했다. 하지만 함 회장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카레의 대중화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결국 함 회장은 카레를 성공시키기 위해 아버지 회사를 떠나 ‘풍림상사(현 오뚜기)’를 창업했다. 이후 새로운 제품 개발에 착수해 1969년 5월 5일 한국 최초로 분말 타입인 ‘오뚜기 분말 즉석카레’를 내놨다. 오뚜기의 출발은 왜 하필 ‘카레’였을까. 1960년대 우리 국민에게 밥은 주식의 개념을 넘어 생명의 가치로 신봉됐다. 특히 함 회장은 밥과 함께 국, 찌개 등 매콤한 맛을 곁들이는 식습관에 주목했다. 국민의 식성을 생각할 때 밥 위에 올려 매콤하게 즐길 수 있는 카레라면 충분히 인기를 누릴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전쟁의 상흔이 남은 생활 실정에서 카레는 좋은 식품 대안이었다. 맛뿐만 아니라 영양과 건강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함 회장이 카레를 눈여겨본 것은 조흥화학에서 기획실장을 맡았을 때였다. 식품산업이 앞선 일본 출장 과정에서 접한 카레의 맛과 영양에 주목했다. 19세기 말 일본에 상륙한 카레는 20세기 초반 군대에서 단체식으로 제공될 정도로 대중화의 길을 걸었고, 패망 후에는 일반 가정에 보급됐다. 카레 식품회사가 등장하고 일본 학교의 단체급식으로도 애용되면서 일본인이 사랑하는 식품으로 각광받았다. 당시 일본식 카레가 한국에도 상륙했지만 여전히 생소한 음식이었다. 함 회장은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오뚜기 즉석 카레는 먼저 시장에 출시됐던 타사 제품인 ‘스타 카레분’과 큰 차별성이 있었다. 먼저 매콤한 향을 살렸다. 개발팀은 카레 가루를 통째로 수입해 쓰기보다 강황과 고추, 후추, 고수 등 원재료를 섞어 직접 카레 가루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일본의 카레 업체들로부터 20여 가지 재료를 알아낸 오뚜기 품질관리과는 나름의 황금비율을 찾아냈다. 수많은 테스트 과정을 거친 연구팀은 여러 향신료가 조화를 이루도록 분쇄한 후 함께 밀봉해서 숙성했는데 향신료들의 맛이 서로 튀지 않고 잘 어우러지는 숙성 온도와 기간을 알아냈다. 그렇게 보관과 긴 유통기간에 적합한 분말타입 카레가 탄생했다. 두 번째 장면 : 시식과 CM송 오뚜기 카레는 국내 최초의 카레제품은 아니다. 시장에 몇 개의 경쟁제품이 있었지만 오뚜기가 뛰어넘어야 할 산은 이들이 아니라 카레에 대한 ‘인식’이었다. 좋은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사람들이 카레를 선택하게 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함 회장은 시장진입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출시 직전 신문광고를 내고, 어린이날에 맞춰 제품을 출시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풍림상사는 새로운 영업전략으로 시장을 파고들었다. 함 회장이 제안한 영업기법은 ‘루트세일’이었다. 일정한 고객을 정해진 순서(Route)로 돌아가면서 판매하는 방법으로 순회직접판매라고도 한다. 제조업자가 중간판매업자를 통하지 않고 소매점과 직결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대금이나 용기 등의 회수도 함께 실시해 유통의 합리화를 도모하는 전략으로, 코카콜라나 펩시콜라 역시 이 방식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제품 배송에서 진열까지 마무리하는 오뚜기 영업사원은 판매점주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당시 오뚜기 영업사원은 일당백으로 시장을 파고들었다. 거래처 점주와 유대를 강화한 오뚜기 영업사원들의 다음 타깃은 소비자였다. 유통시장을 넓힌 후에는 거리시식으로 소비자를 만났다. 견고하게 소비자를 파고든 노력으로 오뚜기 카레는 출시 1년 만에 카레의 대명사로 자리 잡으며 시장을 석권한다. 과감한 결단도 있었다. 오뚜기는 제품 출시 직후부터 과감하게 TV광고를 내보냈다. 신생 식품회사가 막대한 광고비 부담이 있는 TV광고를 방영하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특히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카레 광고는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었다. 이면지를 4분의 1로 잘라 메모지로 사용할 정도로 절약정신이 투철했던 함 회장에게는 더욱 과감한 결정이었다. 비용 문제를 고려해 TV광고 방영은 철저히 계산해 시행했다. 가능하면 토요일과 일요일 어린이 방송프로그램 전후를 지정했다. 공휴일 낮 시간대를 택해 비용은 낮추되, 새로운 식품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어린이와 부모를 적극 공략함으로써 광고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었다. 잊을 수 없는 CM송과 ‘일요일은 역시 오뚜기 카레’라는 슬로건은 소비자에게 오뚜기 카레를 각인시키는 데 한몫했다. TV광고의 반응은 곧 판매로 직결되어 주문량이 늘었고 카레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었다. 마케팅이란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시절에 벌어진 일이다. 세 번째 장면 : 집착 오뚜기 카레는 대성공했다. 출시 10년 만인 1979년 매출은 100억7400만원을 찍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함 회장은 식품연구개발에 몰두했다. 오뚜기는 1983년 초 독자적인 연구조직 출범을 위해 오뚜기식품연구소 설립 준비에 들어갔다. 연구소 발족과 함께 연구개발 예산을 매출액의 1.5%로 책정했다. 당시 우리나라 식품기업의 평균 연구개발비가 0.8%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2배 가까운 투자 결정이었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은 필수적이라는 함 회장의 소신이었다. 식품회사의 기본 중의 기본인 좋은 원료에 대한 집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오뚜기는 현재 원물을 직접 수입해 가공하고 있다. 강황이나 고수 등 독특한 향신료는 해외에서 수입하지만 위생상태와 품질 관리를 위해 현지에서 계약된 농가와 원물 형태로만 수입한다. 한승우 오뚜기식품연구소 센터장은 “향신료를 가루로 내서 들여오면 위생 상태나 품질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계약된 농장에서 원물로 수입한 뒤 조분쇄와 미분쇄를 오뚜기 공장에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약 농장은 인도, 모로코,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에 분산돼 있다. 네 번째 장면 : 도약 창업 12년 차인 1981년 오뚜기는 ‘도약의 해’를 선언했다. 분말형 카레 성공을 발판 삼아 간편성을 극대화한 레토르트 식품 개발에 착수한 것. 레토르트 식품은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무균성, 무방부제, 장기간 유통과 상온저장, 나아가 원재료와 맛과 영양을 유지하는 등 여러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고도화된 설비가 필요했다. 오뚜기는 과감한 투자 결정으로 1981년 4월 안양공장에 레토르트 식품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당시 주력 생산부서인 생산1부에 레토르트 생산시설을 배치한 오뚜기는 이후 시제품 생산에 착수해 한 달 만인 5월 7일 첫 판매제품인 ‘오뚜기 3분 카레 순한맛’을 내놨다. 국내 최초로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내놓은 첫 레토르트 식품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출시 첫해부터 400만 개 이상 팔렸다. 1979년 100억7400만원이던 매출은 1980년 135억원을 돌파했다. 1981년에는 216억원을 달성하며 2년 만에 외형이 2배 이상 성장했다. ‘3분 카레’의 폭발력은 사회적 현상과도 맞아떨어졌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캠핑 바람이 불자 간편식 시장이 확대됐다. 오뚜기 ‘3분 카레’가 국민 음식으로 올라서는 발판이었다. 3분 카레의 선전에 힘입어 1982년 2월에는 ‘오뚜기 3분 스파게티 소스’, ‘오뚜기 3분 짜장’, ‘오뚜기 3분 쇠고기 짜장’ 등을 연이어 선보였다. 레토르트 제품의 다양화를 꾀한 것이다. 다섯 번째 장면 : 변심과 혁신 2000년대에는 웰빙 열풍이 불었다. 오뚜기는 카레에 ‘건강’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2004년 강황 함량을 57.4% 늘리고 로즈마리, 월계수잎 등을 넣은 ‘백세카레’를 선보였다. 이후 2010년대 들어 가정간편식 시장이 확대되고 밀키트 종류가 다양화되면서 카레의 지위도 흔들릴 법했다. 하지만 오뚜기는 건강에 초점을 맞춘 제품을 다양화하고 세계 각국의 카레 제품을 내놓으며 까다로운 소비자 입맛을 맞췄다. 오뚜기 카레가 한국인의 밥상 위에 오른 55년 동안 카레의 의미도 변화했다. 먹을 게 귀하던 1970년대에는 5명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할 수 있던 고마운 음식이었고 1980년대에는 ‘3분 카레’를 출시하며 가정간편식 시대를 열었다. 88 올림픽 특수까지 겹치며 식탁 위에 카레가 오르는 일이 당연해졌고 오뚜기는 설립 20년 만인 1989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밀키트와 간편식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도 오뚜기 카레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55년간 단 한 번도 적자가 나지 않았고 여전히 카레 시장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오뚜기는 카레를 발판으로 지난해 최대 실적을 냈다. 매출은 3조4546억원으로 2년 연속 3조 클럽에 안착했고 영업이익 2549억원을 거뒀다. 카레의 성공을 기반으로 케첩, 마요네즈 시장을 장악한 이후 라면 등 종합식품업체로 성장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이제 맥도날드까지 외면하는 미국인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등 미국 식음료 브랜드들이 3년에 걸쳐 잇단 가격 인상을 단행했고,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팬데믹 후 식품 회사들이 고객의 충성도가 변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며 급격하게 가격을 인상했다가 일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식재료와 인건비 등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가격을 올린 탓에 소비자 부담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미국 먹거리 상승 속도가 최근 1년간 둔화해 왔지만, 팬데믹 이전에 비하면 여전히 물가가 높은 상태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미국 식료품 가격은 2019년 대비 26% 상승했으며, 그중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는 같은 기간 무려 33% 높아졌다. 캘리포니아주 엘도라도힐스에 거주하는 변호사 데이비드 마이클은 기존에 거의 매주 맥도날드를 먹었지만, 탄산음료 가격이 1달러에서 1.69달러까지 오른 걸 확인한 뒤 수개월째 맥도날드에 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식음료 가격에 부담을 크게 느끼는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시장조사 업체 레비뉴매니지먼트솔루션의 조사 결과, 올 1분기 미국 패스트푸드점의 유동 인구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 감소했다. 맥도날드의 올 1분기 주당 순익은 시장 예상치(2.72달러)보다 낮은 2.7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3월 맥도날드의 CFO인 이안 보든은 투자자 회의에서 “일부 미국인 소비자들이 맥도날드를 거부하고 대신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선택했다”며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등으로 인해 지갑을 닫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시장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또 식당에 발길을 끊는 대신 식료품점에서 저렴한 식음료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는 특히 저소득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스타벅스도 지난 30일 실적발표에서 1분기 미국 매장 방문객 수가 7% 감소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2010년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 순이익은 15%가 줄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이제 심지어 식료품에 대한 비용까지 아끼기 시작한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과거 외식 가격에 부담을 느끼고 주로 슈퍼마켓을 찾았던 이들이 이제는 해당 지출까지 줄이면서 이에 일부 대형 식료품 업체들의 매출도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식품 제조 기업 크래프트하인즈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2% 감소했으며, 프링글스 제조사 켈라노바도 북미 매출이 5% 감소했다.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 식음료 브랜드들은 전략을 바꾸고 있다. 앞으로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많은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소비자를 다시 끌어모으겠다는 계획이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

제1484호 - 2024.5.6

제1483호 - 2024.4.29

제1482호 - 2024.4.22